스톤헨지에 가기 위해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 회원에 가입한 이후, 주말이면 늘 가까운 내셔널트러스트 등록지로 나들이를 떠나곤 한다. 영국에 사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필수템’으로 통하는데, 회원 카드가 있으면 입장료와 주차비가 모두 무료이기 때문이다. 주차장에 있는 기계에 회원 카드를 스캔하기만 하면 무료 주차 티켓이 쏙 나온다. 일 년 동안 가입해서 정말 본전을 뽑을 정도로 알차게 잘 사용한 것 같다.
영국에는 전국적으로 내셔널트러스트에서 관리하는 아름다운 자연과 고성이 많다. 그래서 현지 사람들도 한 해는 내셔널트러스트에 가입하고, 다음 해에는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에 번갈아 가입하며 영국의 구석구석을 즐긴다고 한다.
이번 주말 우리가 선택한 목적지는 브리스톨에서 차로 30분, 바스(Bath)에서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덜햄파크 (Dyrham Park) 다.
📍 위치: Dyrham, Chippenham SN14 8HY (브리스톨 & 바스 근교)
🌞 영국에서 26도? 진정한 ‘한여름’ 하이킹의 시작
이날 날씨는 우리가 영국에 온 이래로 가장 더운 기온인 26도를 기록했다. 영국에서 일 년을 살면서 가장 더울 때가 27도였으니, 한여름도 아닌데 26도까지 올라간 건 굉장히 이례적인 날씨였다.
덜햄파크 주차장에서 저택까지 가는 길은 여러 코스가 있다. 가장 짧은 숏컷은 20분 정도 걸리지만, 우리는 모처럼 날씨도 좋고 해서 1시간짜리 하이킹 코스를 선택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정해진 길이 아닌 다양한 샛길로 빠지며 서너 시간도 거뜬히 탐험하듯 다닐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영국 여행의 진짜 묘미는 바로 이런 ‘하이킹’에 있다. 정해진 목표 건물만 쏙 보고 나오는 식의 관광으로는 영국의 매력을 절반도 느낄 수 없다. 광활한 자연과 하나가 되어 걷는 것, 실제로 많은 영국인들이 주말마다 배낭을 메고 하이킹을 즐기며 탐험심을 키운다. 재미있는 건 영국의 산들은 대부분 나무가 없는 초원 형태라 우리가 아는 ‘등산’보다는 ‘언덕 걷기’에 가깝다는 점이다. (물론 스코틀랜드 쪽으로 올라가면 진짜 험준한 산들이 나오긴 한다.)




비록 26도의 더운 날이었지만, 덜햄파크의 넓은 초원을 걷다 보니 언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덕분에 힘든 줄도 몰랐다. 무엇보다 영국은 미세먼지가 없어서 하늘이 눈 시리게 파랗다. 시야가 탁 트여 수십 킬로미터 밖의 풍경도 윈도우 배경화면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예전 프랑스 여행 때 칼레에서 도버해협 건너편 영국 땅이 보였을 정도로 공기가 맑다!) 이런 그림 같은 풍경 속을 걷다 보면 어느새 일상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기분이다.
저택으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과거 이 농지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이 쓰던 집과 낡은 트랙터,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역시나 우리 아들은 옛날 기계들을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 넷플릭스 ‘브리저튼’에 나올 법한 대저택
한참을 기분 좋게 걷다 보니 드디어 저 아래로 궁궐 같은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코로나 방역 조치로 인해 아쉽게도 1층만 개방하고 있었다.)


저택 정원 한편에는 과거 이곳에 살던 귀족들과 일꾼들이 이용했을 아담한 교회도 자리 잡고 있다. 옛날 정문 쪽에서 저택을 바라보니, 화려한 마차를 타고 도착한 귀족들이 드레스를 끌며 저 계단을 올랐을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건물 뒤편의 정원은 그야말로 ‘영국식 정원의 정석’을 보여주듯 완벽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잔디는 자로 잰 듯 반듯하고, 나무와 꽃들도 저마다의 자리를 예쁘게 지키고 있었다.



저택 내부로 들어가 보니 화려한 중국 도자기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과거 영국인들에게 중국 도자기와 차(Tea)는 엄청난 부의 상징이자 사치품이었다고 한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두었던 대영제국 시절, 세계 각지에서 들여온 진귀한 물품들로 저택을 장식했던 그 시대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 영국인들처럼 덜햄파크 200% 즐기기 (ft. 크림티 부먹/찍먹 논쟁)
가만히 지켜보니 영국 사람들이 이곳을 즐기는 방식은 꽤 명확했다.
- 하이킹을 통해 저택 주변의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기
- 저택 내부와 역사 감상하기
- 잔디밭에 앉아 여유로운 피크닉 즐기기!
주차장에서부터 아빠들이 아이스박스처럼 생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가길래 ‘저 안에 뭐가 들었을까’ 궁금했는데, 역시나 먹을 것이었다. 커다란 나무 그늘마다 삼삼오오 가족 단위로 모여앉아 샌드위치와 간식을 먹는 모습이 참 평화로워 보였다.
만약 피크닉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저택 인근에 있는 카페에서 #크림티 (Cream Tea) 를 꼭 맛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가 케이크, 샌드위치 등이 3단 트레이에 차려져 나오는 무거운 정찬이라면, 크림티는 홍차에 스콘, 클로티드 크림, 딸기잼이 곁들여 나오는 가벼운 간식 세트다. 💡 여기서 나만의 꿀팁! 영국 카페 중에는 차가운 스콘을 그대로 내어주는 곳도 있는데, 스콘은 무조건 따뜻해야 제맛이다. 주문할 때 꼭 “Warm up(데워주세요)”이라고 요청하자.

재미있는 건, 영국 내에서도 스콘을 먹는 방식을 두고 의견이 팽팽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 데번(Devon) 스타일: 클로티드 크림을 듬뿍 바른 뒤 그 위에 잼을 얹어 먹는다.
- 콘월(Cornwall) 스타일: 잼을 먼저 얇게 펴 바르고 그 위에 크림을 얹어 먹는다.
마치 한국의 ‘탕수육 부먹 vs 찍먹’ 논쟁만큼이나 자존심을 건 영국인들의 맛 논쟁이다. 내 입맛에는 결국 입안에서 섞이면 다 똑같이 맛있게 느껴지지만, 영국 문화의 소소한 재미이니 방문하신다면 꼭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보시길 바란다.
🚗 돌아가는 길, 그리고 근교 즐길거리 추천
관람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들에게 이 더운 날 다시 1시간 코스를 걷자고 할 수는 없었기에, 가장 빠른 지름길(20분 코스) 포장도로를 택해 걸어 올라왔다. 올라가는 길 중간에 저택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으니, 나무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며 풍경을 눈에 담아가는 것을 추천한다.


📌 [나만의 꿀팁] 한국 여행객을 위한 주변 즐길거리 & 맛집 정보
- 주변 연계 여행지: 바스(Bath) 시내 구경 덜햄파크는 로마 시대 목욕탕으로 유명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 ‘바스’와 매우 가깝다. 오전에 덜햄파크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힐링하고, 오후에는 바스로 넘어가 로만 바스(Roman Baths)와 초승달 모양의 웅장한 건축물 로열 크레센트(Royal Crescent)를 구경하면 완벽한 하루 코스가 완성된다.
- 주변 맛집 추천: 영국 전통 펍에서 즐기는 선데이 로스트 (The Crown Inn, Tolldown) 만약 저택 카페의 간식으로 부족하다면, 덜햄파크 입구에서 차로 2~3분 거리에 있는 ‘The Crown Inn’ 같은 근처 전통 펍(Pub)을 방문해 보시길 추천한다. 특히 일요일에 방문한다면 영국의 전통 주말 식사인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 – 구운 고기와 요크셔푸딩, 야채에 그레이비소스를 듬뿍 얹은 요리)’를, 평일이라면 바삭한 ‘피쉬 앤 칩스’에 로컬 에일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면 최고의 식사가 될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 하이킹과 귀족들의 삶이 엿보이는 저택 관람, 그리고 달콤한 크림티까지. 완벽했던 브리스톨 바스 근교 여행 덜햄파크 나들이 끄-읕!
